|
차 안에서 겨울을 버티던 삶, 이제 따뜻한 집이 생겼습니다
박동훈(가명)씨는 한때 전기기술자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배우자와 이혼하고, 자녀들과도 연락이 끊기면서 삶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친어머니와 남동생이 오랜 시간 병을 앓게 되었고 박 씨는 가족의 치료비와 돌봄을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산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결국 채무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시간 끝에 어머니와 남동생은 세상을 떠났고,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박 씨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박 씨가 생활하던 차량]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한 겨울 밤 머물 곳이 없어 차 안에서 잠을 청하고 외투를 몇 겹이나 끌어안고 몸을 웅크려보았지만 시동을 끈 차 안은 금세 차가워졌고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기댈 수 있는 가족도 곁에 남은 사람도 없다는 깊은 절망 속에서 박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구조되어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퇴원 후 박 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박 씨가 생활하던 차량] 여분의 옷도, 생활용품도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휴대전화 요금도 장기간 체납되어 곧 정지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몸도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자살 시도의 후유증으로 오른팔과 손가락 신경이 마비되어 예전처럼 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몸도 마음도 벼랑 끝에 서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마지막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행정복지센터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례관리자는 박 씨의 상황을 확인한 뒤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박 씨의 새로운 주거지]
급하게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고 3개월의 조사기간동안 긴급생계비를 받았지만 당장 생필품과 먹을 것을 사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보증금 300만원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작은 방 하나를 마련해 집주인은 한 달 안에 보증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임시 입주를 허락했지만,
사례기관 내부에서 보증금 지원 제도는 없었고 연초라 민간자원 연계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등 도움을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박 씨의 새로운 주거지] 그때 SOS위고의 주거보증금 300만 원이 지원되었습니다. 박 씨는 더 이상 차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와 지역 자생단체, 그리고 여러 민간 자원들이 함께 힘을 보태 생필품과 가전제품도 마련되었습니다.
차 안에서 버티던 삶이 비로소 한 칸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은 제게 생명의 은인입니다.”
[박 씨의 새로운 주거지]
박 씨는 조사가 완료되면 수급자로 선정될 예정입니다. 이후 자활근로에 참여하며 다시 삶을 이어갈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가장 위태로운 시간을 SOS위고가 붙들어 준 것입니다.
과거에는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말하던 사람이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일하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도움보다 더 많이 사회에 돌려주며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박 씨에게는 다시 시작할 내일이 생겼습니다.
[감사편지] SOS위고와 함께 소외된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 본 사연과 사진은 이랜드복지재단이 사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SOS위고 문의: 02)2644-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