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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엄마로, 연결이 삶이 되기까지” 김지은(가명) 씨는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혼 이후, 13살까지 위탁시설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시설을 나와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지만, 그곳은 보호가 아닌 또 다른 상처의 시작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어머니로부터 반복되는 폭행 끝에 어머니는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고, 김 씨는 또 다시 가족과 분리된 채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시설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보호시설을 퇴소한 뒤, 가족들은 지적 장애와 경계성 장애가 있는 김 씨를 장애 수당을 이유로 협박했고 김 씨는 또다시 도망치듯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김 씨는 거리로 나와 노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가 머물던 곳은 서울역 인근, 그리고 서울 00 병원 주변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했고, 새벽이 되면 다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씻을 곳이 없어 피부병이 생겼고, 가려움과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치료가 시급했지만, 병원을 다닐 수 있는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노숙을 하던 중, 김 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임신 12주 차로 치료와 보호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김 씨를 지켜줄 수 없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김지은(가명)씨 사진]
위키코리아 위고봉사단의 연계로 SOS위고가 김 씨를 처음 만났을 당시, 김 씨에게는 노숙하던 날 입고 있던 옷 한 벌 뿐이었습니다. 갈아입을 옷도, 추위를 막아줄 방한용품도 하나 없었습니다. SOS위고는 긴급 PES 물품지원을 통해 당장 식료품과 생필품, 의류를 지원했습니다. 임신 중인 몸으로 굶지 않도록, 씻고 잠들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돌봄이었습니다. 김 씨는 위키코리아 자립관에 긴급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입주를 기다리는 청년들이 많이 있었기에 김 씨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김 씨의 아이] 이후 LH 전세임대 신청을 진행하고, 한 사람의 삶이 다시 거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위고봉사단원이 마음을 모아 LH 전세임대 자부담 보증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는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김 씨를 향한 응원이었습니다. 김 씨는 자립과 자녀 양육에 대한 의지가 강했습니다. 장애인고용공단과 연계해 옷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며,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심해지는 입덧과 악화된 건강 상태로 장기 근무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제 발로 살아가고 싶어요.”
출산 이후 김 씨는 미혼모 시설에서 산후조리를 받았고, 이후 LH 전세임대로 이사해 현재는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 씨의 주거지] 출산 이후의 생활도 점차 안정되었습니다. 현재 아이는 11개월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급여를 지원받아 관리비 약 10만 원 정도만 개인 부담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 김 씨는 사회복지사 사이버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특수학교에서 친구들을 도왔던 기억이 마음에 남아, 언젠가는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교회와 멀어졌던 김 씨는, SOS위고 지원을 시작으로 다시 신앙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현재 주영광교회에 출석하며 예배에 성실히 참여하고 있고, 목사님의 정서적 돌봄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김 씨와 아이] 또한 위키코리아 만나하우스에서 한 달에 한 번 퀵배송 봉사에 참여하며, 사람들과 교제하고 식사를 나눕니다. 거리에서 혼자 버텨야 했던 삶에서,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 머무는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 씨의 회복은 기적이 아니라 연결의 결과였습니다.
그 모든 손길이 모여 김 씨는 오늘 엄마로, 한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SOS위고와 함께 소외된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 본 사연과 사진은 이랜드복지재단이 사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SOS위고 문의: 02)264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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