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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밖에서 아이들을 키우던 지영씨의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미혼인 한지영(가명)씨는 두 명의 조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인 언니는 우울증과 자살 시도로 인해 경찰의 접근금지 조치를 받았고, 아이들과 강제로 분리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시설로 보내졌지만 반복되는 따돌림과 폭행 속에서 보호 받지 못했고 결국 이모인 한 씨가 아이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씨는 보호자가 되었지만, 아무 제도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엄마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공식적인 보호자로도, 법적 위탁가정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도움이 절실했지만, 대부분의 공적 지원에서 제외되고 복지사각지대로 밀려 났습니다.
[방문학습지 교사 근로 중인 한 씨] 한 씨는 방문학습지 교사로 프리랜서 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는 한 번에 몰려왔습니다. 아버지가 한 씨 명의로 4억 원의 부채를 남기고 갑작스럽게 소천하시면서 한 씨의 통장은 압류를 당했습니다. 파산을 고민해야 할 만큼 삶은 벼랑 끝으로 몰려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발 인대가 끊어졌지만 수술비가 없어 미루고 미루다 끝내 일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장 근로를 중단한 채로 아이 둘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절박함이었습니다.
정부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했지만, 사춘기인 아이들의 식비를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어떤 복지 서비스와도 연결되지 못한 채, 한 씨는 문제를 오롯이 혼자 버텨내야 했습니다.
[경기중앙교회 공동체와 한 씨] SOS위고는 한 씨를 만나서 당장 수술을 받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아이들과 생활할 수 있도록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한 씨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위고의 도움은 무너지는 순간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었습니다. 회복기간 동안 위고의 지원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한 씨는 다시 아동미술 방문수업 강사로 현장에 복귀했고, 멈춰있던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중앙교회 멘토링 중인 한 씨와 두 아이들] 그러나 진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교회 공동체에 연결되면서, 이 가족은 처음으로 ‘함께 버텨주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던 아이들은 매주 교회에 가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고, 합창단 활동과 멘토링, 상담을 통해 조금씩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첫째는 드럼, 둘째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삶이 불행해서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공동체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가는 모습은, 이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이제는 믿어요”
[졸업식에서 한 씨와 첫째아이] 졸업실 날,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이 직접 찾아와 아이들을 축하해주던 모습은 가족에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 한 씨는 눈물을 흘리며 SOS위고에게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교회 다니기 전에는 뭘 먹을까 걱정만 했고,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냥 우울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라면을 먹어도 매일매일이 기뻐요. 조카들과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위고봉사단과 첫째아이]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SOS위고의 도움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삶이 풍족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가 자신의 오늘을 함께 책임져 주었다는 경험이 한 씨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SOS위고는 사각지대 가정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또 다른 기적 같은 일상을 만들어갑니다. SOS위고와 함께 소외된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 본 사연과 사진은 이랜드복지재단이 사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SOS위고 문의: 02)264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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