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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된 후, 삶이 달라졌습니다."
[함선호(가명)씨 사진] 함선호씨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함 씨의 어린 시절은 가족의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집을 떠났고 알코올 중독이 있던 아버지와 살아야 했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폭력은 일상이었고, 집은 쉼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도망쳐야하는 장소였습니다. 어린 함 씨는 맞는 이유도 없이 그저 견뎌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여섯 살, 열한 살 노숙을 한 경험이 있던 함 씨에게 노숙은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된 공포였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연락이 끊겼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3년 뒤, 아버지마저 암으로 사망하셨습니다. 함 씨는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에 세상에 홀로 남겨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함 씨는 쉼터로 향했고, 동생은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지며 형제는 서로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함 씨와 봉사단원의 사진] 이후 함 씨는 방황했습니다. 삶을 붙잡아 줄 어른도, 미래를 그려볼 힘도 없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소년원 처분을 받게 되었지만, 그 곳에서 함 씨의 인생을 바꾸는 한 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소년원에서 만난 장로님,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이어진 화평교회의 위고봉사단. 그 인연은 단발성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봉사단은 함 씨의 곁을 지켜주었고 다시 길을 잃지 않도록 삶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함 씨는 도움의 손길 속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쳤고 처음으로 “나도 살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주에 거주하던 시절에는 자전거 수리 자활근로를 하며 땀 흘려 일하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이사오면서 자활근로가 중단되었고, 내년 상반기에 새로운 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함 씨는 생계급여로 살고 있습니다.
[함 씨와 봉사단원 사진] 하지만 과거 여섯 살, 열한 살 때 거리에서 밤을 보냈던 기억은 함 씨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거의 문제는 생존과 연결된 두려움이었습니다. 최근에 다행히 LH청년전세임대주택에 선정되었지만, 보증금 100만원이 또 하나의 벽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함 씨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어릴 때 노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갈까봐 밤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 때 SOS위고의 주거비 지원이 연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거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함 씨의 신앙공동체 사진] 함 씨를 오랫동안 지켜본 봉사단은 말합니다. “함씨는 수급자를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다시 일어설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함 씨는 봉사단을 따라 종교를 갖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도 나가며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자기와 같은 사람을 돕고 싶다며 봉사단과 함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고 간증하기도 합니다. SOS위고 주거비 지원은 함씨가 쉼터와 시설을 지나, 다시 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붙잡아 준 손이었습니다. 오늘도 SOS위고는 한 사람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삶의 한가운데에 함께 걷고 있습니다. SOS위고와 함께 소외된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 본 사연과 사진은 이랜드복지재단이 사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SOS위고 문의: 02)264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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