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하던 父의 죽음, 그 이후… 쓰레기집 속 청년의 ‘재시작’ 이야기
경기도 부천에 사는 우모(34)씨의 집 내부가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이랜드복지재단
“그땐 그냥,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내일을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 21일 경기 부천시의 한 빌라에서 만난 우모(34)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렸을 때부터 살던 그의 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로 가득했다. 우씨 역시 건강도, 마음도 무너진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상처로 얼룩진 과거
우씨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는 얼굴도 알지 못했고, 홀로 자신을 키운 아버지의 폭력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초등학생이었던 우씨를 흉기로 찌르겠다며 협박했다. 그때 남은 트라우마로 칼과 피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우씨는 지금도 요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떤 날은 ‘훈계한다’며 우씨를 세탁기에 집어넣었고, 청소기를 집어던진 날도 있었다고 한다. 우씨의 이마에는 여전히 그날의 흉터가 남아 있다.
우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떠난 후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 그가 31세가 됐을 때 경찰을 통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 그토록 냉랭했던 아버지였지만,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유언이 우씨를 다시 집으로 이끌었다.
삶을 집어삼킨 그림자 하지만 홀로 남은 집에서 우씨는 깊은 무기력함에 빠져들었다. 미워했지만, 유일한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집 밖을 나가는 건 새벽 2시,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올 때뿐이었다. 집에 누군가 찾아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게임만 했다. 그러다보니 집에 하나둘씩 쓰레기가 쌓여갔다. 나중에는 누워있는 공간 외에는 쓰레기가 벽처럼 쌓였다.
건강 상태도 심각해졌다. 2년 동안 라면만 먹다 보니 방에서 거실까지 걷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죽음을 결심할 정도로 삶의 끝자락에 서 있던 그에게는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쓰레기가 쌓이듯 그의 마음속에도 절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 줄기 빛, 그리고 용기 있는 한 걸음 쓰레기를 치운 후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한 우씨의 집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그를 붙잡은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우씨는 고마웠던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고모는 “죽지 말고, 몸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보라”고 타일렀다.
이 한마디는 우씨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줬다. 119에 전화해 응급실에 실려갔고, 간경화 진단과 함께 신장 기능이 20%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이야기를 들었다. 우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실은 살고 싶어서 주변에 연락을 취했던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어렵게 집 밖으로 나온 우씨를 세상은 홀로 두지 않았다. 고모는 병원비를 지원해줬고, 이랜드복지재단은 집 수리를 맡았다.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도배‧장판까지 새로 해 깨끗한 집으로 만들어줬다. 주민센터 직원은 우씨에게 꾸준히 연락하며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우씨는 “집 청소만 해주고 끝났다면 저는 어쩌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며 “그런데 계속 옆에 있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데,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시작된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희망 우씨의 집 거실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렸을 때 찍은 본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가영 기자
우씨는 현재 중독센터에 다니며 게임 중독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을 하기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육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우씨는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에 붙었지만 등록금을 내줄 사람이 없어서 포기했던 꿈이다.
우씨는 거실 벽에 아버지의 사진을 걸어두고 매일 바라본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지는 않았지만,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는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들에게 말했다. “혼자는 절대 안 됩니다. 누가 도와줄 때,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을 받으세요. 정부 지원도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나만 생각하면 바뀌는 게 쉽지 않지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씩 움직이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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