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같던 집이 봄처럼 따뜻”… 고령 시각장애인 주거환경 개선 지원 [나눔, 다시 희망으로] 이랜드복지재단 “여길 떠나면 아무것도 못해요. 눈은 안 보이지만 여기선 화장실도, 컵도 다 알거든요.”
김상효(가명, 76세) 어르신은 경남 한 지역의 무보증 월세 10만 원 단칸방에 홀로 거주하고 있다. 기초생계급여와 기초연금 71만 원이 전부인 그의 삶은 오직 이 작은 공간 안에서만 유지된다.
그는 2018년 뇌출혈로 쓰러져 편마비 판정을 받았고 최근에는 양쪽 눈 모두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방 안에서조차 낙상할 정도로 그의 일상은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익숙한 공간을 떠날 수 없었다. ‘기억’으로 사는 시각장애인의 삶에서 공간은 곧 생존이기 때문이다.
천장이 무너진 그날, 위험은 현실이 됐습니다
김상효 어르신의 집 내부 모습. 벽은 빗물이 새 곰팡이가 피고 천장은 무너져 내려앉고 있다. 이랜드복지재단 제공 김 어르신은 10년 전 이혼 후 세 자녀와 연락이 끊겼다. 홀로 살아온 세월 동안 그가 의지한 것은 성실함과 규칙적인 루틴이었다. “예전엔 산불 기동대원이었어요. 남들처럼 열심히 살려고 했죠.”
시각장애인에게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다. 벽과 가구, 물건의 위치는 머릿속에 그려진 ‘보이지 않는 지도’가 된다. 컵이 놓인 위치, 화장실까지의 걸음 수, 침대에서 문까지의 거리… 이 모든 것이 몸에 밴 기억이 돼 일상을 지탱한다.
2024년 겨울, 눈이 내린 어느 날. 이웃들과 요양보호사는 김 어르신과 연락이 닿지 않자 관리기관에 구조를 요청했다. 현장 실사에서 확인된 집은 곰팡이와 누수, 쥐의 배설물과 악취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천장 골조가 무너지며 붕괴 사고의 위험이 컸다.
관리기관도 긴급 이전을 검토했지만 보증금 없이 월세만 가능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시력을 잃은 김 어르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김상효 어르신의 집 내부 모습. 벽은 빗물이 새 곰팡이가 피고 천장은 무너져 내려앉고 있다. 이랜드복지재단 제공
“이 집이 무너져 버리면 어르신의 삶도 함께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는 실사 후 즉시 주거환경개선비 280만 원을 긴급 지원했다. 천장을 새로 짜고 누수 차단, 방수 시공, 해충 유입 차단까지 진행해 붕괴와 감염 위험을 해소했다.
환경이 개선되니 피부염과 기관지염 증상이 호전됐고 월 1회 병원 진료를 연계해 건강도 안정적으로 관리 중이다.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던 공간은 이제 한 사람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봄처럼 따뜻해진 집, 연결된 사람들

주거 환경 개선 후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제공
“이제는 웅크리지 않고 똑바로 누워 잘 수 있어요. 누워만 있어도 기분이 달라요.”
김 어르신은 지금의 집을 ‘봄 같은 집’이라고 부른다. 이웃들과 요양보호사 역시 “이젠 안심된다”며 방문 횟수가 부쩍 늘었다.
남의 도움을 ‘부끄러움’이라 여겼던 김 어르신은 이제는 이웃의 관심과 SOS위고의 손길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집이 바뀌자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혹시나 무너질까 걱정돼 잠시 머물다 가는 것조차 꺼리던 이웃들이 이제는 자주 찾아온다. 공간의 변화가 한 사람의 관계망을 다시 엮어준 것이다.
공간은 곧 존엄… 복지 사각지대를 다시 보다
김 어르신의 사례는 말한다. ‘공간을 지키는 것이 곧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국내 시각장애인 약 25만 명 중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은 자립의 마지막 보루다.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는 주거 환경을 고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삶을 지키고 살아갈 이유를 다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회적 돌봄의 시작이라는 믿음 아래 오늘도 위기의 골든타임을 지키고 있다.
“공간의 회복을 통해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사회 공헌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랜드복지재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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